1. 책읽기 그리고 기록
책을 좋아한다고 번번이 말하면서도 생각해 보면 그다지 많이 읽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독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책’은 아니었을까. 책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책을 쌓아두고 그 모습을 보는 것을 뿌듯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다른 이들은 내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 책을 읽어야 했다. 사실 이것은 나를 조금 더 재촉할 부가적인 이유일뿐이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간직하고 있는 독서와 배움에 대한 욕구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서점에 가는 일이 잦아졌고 손에 책을 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책 속 문장이 주는 가슴의 울림, 배움에 대한 기쁨, 책을 덮은 후 벅차오르는 감정, 용기를 얻고 희망으로 가득 찬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일 등. 모두 다 책을 통한 진귀한 경험이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데 지나고 나면 당장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곤 했다. 허무하기도 했고 억울하기도 했다. 간단하게라도 오늘의 기록을 남겨 보기로 했다. 거창하게 적지는 않았다. 먹었던 음식 중 특별히 맛있었던 음식, 읽었던 책, 방문했던 장소, 인상 깊었던 일 등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짧게 기록했다. 시간은 흘러가도 언제든 남아있을 기록들로 나의 지나간 시간을 추억할 수 있도록.
2. 도전, 그리고 미완성의 결실.
엄밀히 말하면 신랑의 도전이지만 결정에 있어서 내가 차지하는 부분도 컸다고 생각한다. 함께 결정했다. 도전하기로 했다. 우리는 불확실했던 기회에 도전했다. 보살펴야 할 아이들이 있는데 익숙하고 안정적인 것을 유지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모두가 말할 때 우리는 용기를 모아 더 나은 성장을 위한 불확실성을 택해 보겠다고 결정했다. 신랑은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6개월 동안의 노력 끝에 합격률이 매우 낮은 시험에 합격해 냈다. 물론 합격의 기쁨을 오래 누릴 여유는 없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았다. 그러나 희망을 보았다. 불확실성은 그저 삶의 일부일 뿐이다. 인생에 확실한 것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저 서로를 지지하며 기회를 향해 걸어갈 것이다.
3. 여행
바쁜 와중에도 주말여행은 놓칠 수 없었다. 엄마, 아빠와 보내는 주말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 주중에 바쁜 시간을 보내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훌쩍 커 숫자와 시간 개념이 생긴 나이가 되어버린 첫째 아이는 요일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오늘 수요일이야? 그럼 세 번만 더 자면 토요일이야?”, “우와, 오늘 토요일이다. 어디 놀러 갈까?”를 묻는 아이의 순수한 미소와 목소리는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나를 벌떡 일어나게 만들어 주는 에너지이다. 이번 가을에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지역의 사찰 여행을 특히나 많이 다녀왔다. 특별히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부부는 사찰에 다녀오면 마음이 안정된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아이들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가을날 사찰의 정취, 우리가 나누던 대화의 느낌, 공기의 냄새,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모여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그 자체로 일상 속 치유였다.
4. 생일
가을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내가 태어난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번 생일은 유난히 축하를 많이 받았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생일의 의미가 많이 축소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서러울 때도 있었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지인들은 나의 생일을 종종 잊기도 했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축하하다는 말 한마디 겨우 건네는 것이 전부였다. “생일이라고 해봤자 이제 특별하지도 않은걸. 생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에 마냥 기쁘게만 보낼 수 없었던 어느 생일 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괜한 심술을 부렸던 적도 있다. 그러나 누가 축하해주든 아니든 그 문제를 떠나서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가장 소중한 건 ‘나’이지 않나. 내가 세상에 태어난 축복의 날에 소중함과 특별함을 덜지 말자고 생각해 본다. 나를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은 나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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